유태영2
현)건국대학교 총장.
유태영 박사
그는 1932년 전라북도 임실군 깊은 산골마을 머슴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논1평, 밭1평 없는 가난한 집에서 누나들이나 형들이
초등학교도 못 다녔던 것처럼 그도 학교는 상상할 수 없었다.
품팔이하며 살다가 동네어른들의 권유로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신발이 없어 맨발로 학교를 다니고,
13살까지 팬티를 입어본 적이 없고, 요즘 같은 여름방학 때는
숙제할 노트를 못 사서 여기저기서 종이를 모아다 노트를
만들어 숙제를 해갔다.
이처럼 가난에 지쳐 머슴살이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어떻게
장래를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13년이
되기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우박이
솟아지나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녔다.
그는 어렵게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서
1953년 전쟁직후 폐허가 된 도시에서 신문팔이, 신문배달,
아이스께끼 장사, 빨래비누 장사를 하며 야간고등학교와
야간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배고픔과 영양실조로
쓸어졌을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원망,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현재 겪는 이 고통은 하나님께서 장차 나를 쓰시기 위해서"
라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감사의 생활을 하였다.
그는 계속 기도하면서 "유학을 가야겠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만을 가지고 그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무식
담대하게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썼다.
몇 개월이 지나 덴마크 왕실로부터 회신이 왔고
그 후 덴마크에서 공부를 하였고, 후에 세계10대 대학이라는
히브리大에서 수석을 하게 되었다.
히브리대에서 사회학 교수로 몇 년 동안 있다가
우리나라에 와서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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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박사의 책과 간증을 통해,
감사하지 못하고,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나의 삶을 다시한번 반성했다.
현재의 내 모습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있어
가장 지혜로운 일임을 잘 알기에,
나 역시,
내 삶에 체계적인 설계도를 세우고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감사하는 시간보다 나를 책망하는 시간들로
그 목적성들이 변질되어 가고 있음에 반성해본다.
아는 사람이 되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자.
하나님은 실패한 자는 사용하시지만,
포기한 자는 사용하시지 않는다.
Never give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