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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물

김교신의 신앙

elimcy 2013. 1. 26. 23:05

< 김교신의 신앙을 배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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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선생님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생나 1901년 - 1945년 짧은 생애를 살다간 믿음의 선배입니다. 조선의 패망, 그로인한 일본의 식민지를 경험했고. 해방의 순간 하늘나라로 갑자기 떠나셨습니다.



요즘 들어 다시금 김교신선생님의 신앙을 본받자는 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왜 한 신앙의 선배에 대하여 천국에 가신지 70여년이 지난 지금에 그의 신앙을 다시금 연구할까요? 김교신선생님의 신앙은 무엇일까요?



1. 민족을 품은 신앙이었습니다.

조선의 패망을 목격하고 선각자적인 마음으로 일본을 배워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평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하며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런데 학업중 일본교회 개혁운동을 주창하고 있던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 1861년 3월 26일 - 1930년 3월 28일> 선생의 성경공부 모임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성경공부모임에서 알게되고 이후 신앙의 본질을 감명 깊게 받아들였습니다.



성경공부 내용을 살펴보면 우치무라는 성서의 본질에 충실한 삶을 외치며 서양의 기독교가 아닌 일본의 기독교운동을 주장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삶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제국주의 시대였던 일본이 중요하냐? 성서의 말씀이 중요하냐?의 질문에 우치무라는 예수의 삶을 선택하였던 사람입니다. 우치무라 성경공부의 핵심은 외형적 교회당(건물)을 중요시 하지 않고,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며 철저하게 성서의 가르침대로 살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이들의 세상질서와 타협하지 않는 철저한 신앙을 부정적으로 보는 보수파들이 이후 우치무라와 김교신 신앙을 <무교회주의 사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우치무라에게 성경공부를 배운 일본에 유학와 있던 조선유학생 송두용(宋斗用)·유석동(柳錫東)·양인성(楊仁性)·정상훈(鄭相勳)·함석헌(咸錫憲) 등과 김교신은 이후 <조선성서연구회> 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매주 모여서 성서를 연구하면 조선의 독립을 하나님의 말씀위에서 진행하려고 했습니다.



2. 삶과 일치되는 성서신앙을 강조했습니다.

작은 무리였지만 이들은 1927년 조선에 귀국하여 <성서조선>이라는 평신도 최초의 월간 개신교 신앙잡지를 만들었습니다. 성서조선은 이후 김교신이 전적으로 모든 것을 도맡아 만들었고 당대의 많은 기독교엘리트들에게 조선을 성서로 해방시키자라는 확신한 신앙의 비전과 꿈을 제시했습니다.

1943년 158호 <조와(吊蛙>사건, 개구리를 애도함의 뜻>으로 폐간 되기 까지 김교신의 성서조선은 놀라운 정도로 한국사회 곳곳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3. 평신도의 투철한 직업소명관을 남겼습니다.

한국교회의 병폐중 <성직주의>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성직자는 평신도와 다르다라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특권의식이 발생하고 교회안의 평등의식이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중세 때 구교의 잘못된 소명관을 한국개신교가 오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입니다. 그런데 김교신선생은 평신도의 삶은 직업에서 투철하게 나타난다라는 것입니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이 주셨고 그속에서 이 땅에서의 귀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있다는 것입니다. 김교신선생님은 고등학교 교사를 오래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며 민족의 일꾼들을 길러냈습니다. 이후 김교신에게 배운 엘리트들이 한국사회의 주역이 되었고 지금도 그의 신앙을 본받자고 합니다.



결론

김교신선생님의 신앙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외형적 물질주의, 기복적 축복주의, 세속주의, 현실주의를 비판합니다. 철저한 신앙인의 삶은 늘 이웃(민족)을 걱정하고, 복음적으로 스스로를 희생하며, 성서의 권위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실천적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무교회주의가 70년 전 당시에는 너무나 허황된 신앙이라고 비판받았지만 오늘날의 한국교회 현실을 생각할 때 구체적인 대안으로 급속히 부상하고 있습니다. 김교신 선생은 교회를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성서를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더욱 철저하게 삶으로 예수를 고백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교회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성령의 인도 가운데 살려면 누구나 성서앞에 머리숙여 순종하여야 하고 구체적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주장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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