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지도와 목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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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웅 |
2007/06/03, 조회 : 313, 추천 : 0 |
“당신이 영혼의 친구를 찾기까지는 외출을 금하고 먹지도 말라. 왜냐하면 영혼의 친구가 없는 사람은 목이 없는 몸뚱아리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혼탁한 우물물은 마실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의 친구가 없는 사람의 상태와 같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St. Brigid이 한 성직자에게 권면한 말 Book of Leinster에서
들어가는 말
오늘날 목회의 위기를 언급하며 염려하는 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70년대 이후 20년간 계속 성장세를 누리던 개신교는 90년대 후반부터 주춤하더니 근래에 이르러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우리의 목회현장에 대한 심각한 성찰을 요구받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만 목회의 주된 위기는 목사의 위기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위기는 목회자의 자질에 대한 불만에 주로 기인하는 까닭에 단순히 기능적 수행을 잘 감당하는 목회자 상을 뛰어 넘어 기본적 존재형성이 절실한 때이다. 즉 사람들은 목사에게서 신학적 정확성이나 기능적 우수성 보다 성직자 다운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데 정작 홍수 때 마실 물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오늘날 넘쳐나는 목회자들 가운데서 참된 목회자를 찾지 못해서 갈증을 느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본 발제문에서는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배경으로 오늘날 교회의 강력한 목회의 한 방편인 영성지도 사역을 소개하고 어떻게 목회자와 교인의 존재형성이 가능하며 이를 위한 목회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지를 다루게될 것이다.
특히 지난 3년간 발제자가 개신교 영성지도 기관인 아가페 크리스찬 치유센터를 통해 112명에게 일대일 영성지도를 제공한 경험과 미국과 캐나다와 한국에서26회 시행했던 영성지도 세미나를 통해 이 사역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경주해온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러한 개신교 안의 매우 낯선 사역이 오늘 우리의 목회 현장에 가져다 주는 의미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볼 것이다.
1. 변화하는 목회환경
오늘날 우리의 목회환경은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사회는 금년에 일인당 국민총생산이 2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주 5일제 근무의 확산과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얻을 것과 잃을 것이 극명히 드러나게될 것이다. 이 때 얻을 것은 풍부한 여가와 지식과 내용이다. 반대로 잃을 것은 개인주의라는 양극화 현상이다. 그 결과 결혼을 기피하는 독신가정이 늘어가고 있으며 자녀 낳기를 거부하여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소위 말하는 나홀로 세대는 나홀로 모든 것을 할 것이고 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며 그 결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 공동체성을 점차 상실해 가고 있다.
이렇게 홀로 사는 시대에는 현대인에게 만연된 2가지 아픔 즉 “우주적 고독”과 “지루한 무의미” 가 그 특징으로 드러난다. 나홀로 시대의 현대인들은 무엇 보다 외로운 존재들이다. 삶의 전 분야에 걸쳐 안개와도 같이 짙게 드리운 외로움은 삶을 지루한 무의미로 인도하며 그 결과 절망에 몸부림 치게 된다. 절망은 영적인 무감각을 초래하며 신앙의 역동성을 앗아가고 공동체 형성을 불가능하게 이끌어 가는 특징이 있다.
한편 이러한 영적궁핍과 공허감의 반작용이 각종 신비체험에 대한 갈증으로 드러나고 있다. 각종 이단의 성행이나 뉴에이지와 같은 움직임들도 이러한 영적 갈증에 대한 추구의 한 결과일 따름이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기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감수성을 개발하기 위한 방법으로, 교회가 아닌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다른말로 표현하면 현대인의 갈구는 삶의 근본적 가치를 추구하는데 있으며 그들은 필사적으로 삶의 깊이와 의미를 기르쳐줄 사람을 찾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목회자도 예외가 아니다. 목회자들은 갈수록 더 성공해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 결과 행함을 위한 끝없는 욕망과, 성취를 위한 끊임없는 욕구와, 결과를 위한 원색적 굶주림과, 가시적 성공에 대한 고집으로 우리를 눈멀게 하는 행위들에 자신도 모르게 깊에 빠져들어가게 된다. 그 심연의 끝은 소위 엘리야 신드롬이요 탈진이다. 이 모든 일들의 저변에는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분노의 상태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까닭에 심지어는 목회사역을 외적으로 훌륭하게 수행하는 목사라도 알코올 중독, 성적, 정신적 이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늘어가고 있다.
이렇게 영적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교인들 뿐만 아니라 목회자 자신도 찾아갈 대상도, 찾아가서 전문적 훈련이 갖추어진 지도자를 만나기도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다행히도 오늘날 목회상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상담을 통해 이러한 문제에 도움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정신적 문제가 아닌 영적인 성장은 단순히 상담만으론 효과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특수성이 있는 까닭에 이 또한 여러가지 제약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상담가 이상의 존재여야 하며 한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하는 내적인 문제와 치유의 능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치유사가 되어야 한다. 즉 목사는 마땅히 교인들을 영적 삶으로 안내하는 영성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일부 신학교에 국한된 극히 제한적인 관심과 실천을 제외하고는 이 분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한 실정이다. 필자가 지난 3년간 일대일 영성지도를 제공한 112명의 피지도자들을 상대로 영성지도를 제공하기 전에 “이전에 영성지도나 이와 유사한 일대일 상담을 규칙적으로 기간을 정해 놓고 받아본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 가운데 9명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몇번 목회상담을 받은 경우가 있다고 답했으나 단 한명도 규칙적이고 지속적인 영성지도 경험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반응을 얻은 바가 있다. 심지어는 그 112명 가운데 7명을 제외하고는 영성지도라는 용어 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최근에 국제영성지도자 협회의 한국지부가 국내에서도 형성이되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니 반가울 따름이다.
한편 세계 신학교육의 추세는 발빠르게 변하고 있는 중이다. 필자가 인터넷을 통해 조사해 본바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충 확인된 바로만 세계적으로 영성지도자 교육을 제공하는 신학대학이나 전문단체는 (석사학위 이상의 과정이나 2년정도의 교육을 통해 수료증을 제공하는 기관) 37개 단체이며 적어도 한과목 이상을 개설한 학교나 단체도 18개로 지난 5년 전에 비해 급속도로 그 숫자가 늘어가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실제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단체들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더 나아가 근래에 이르러 개신교 안에서도 영성지도에 관한 책들이 엄청난 양으로 발간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영성지도는 오늘날 교회 안팎의 핵심적 관심사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추세이다.
2. 영성지도: 현대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1) 영성지도의 정의
그렇다면 영성지도란 무엇인가? 이처럼 낯설은 용어가 왜 이렇게 근자에 개신교 안에 회자되고 있는 것일까?
영성지도란 낯설은 용어는 종교개혁 이후 교회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잃고 있던 소중한 보물이다. 근래에 이르러 영성에 관한 일반적인 관심의 부활에 힘입어 이 보물에 대한 관심도 새로운 각광을 받게 되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심리치료나 상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시에 이 방법들이 지닌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고 (심리학 만으로는 영적인 특수 영역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어렵다는 한계성) 외부의 방식이 아닌 교회 안의 본연의 전통과 자원들에 보다 깊은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 결과 개신교 안에서도 재발견된 영성지도가 이 시대 전인적 치유의 새로운 도구로 점차 관심이 증대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영성지도(Spiritual Direction)란 종종 영적인도(Spiritual Guidance), 영적친구(Spiritual Friendship), 영혼의 친구(Soul Friend), 영적 동반(Spiritual Companion), 영혼의 의사 (Soul Physician)또는 영적 가르침(Spiritual Mentoring) 등으로 시대마다, 다양한 관점에서 폭넓게 불리워 왔다. 그러나 그 어떤 명칭으로 부르든지 거의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다만 역사적으로 가장 자주,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영성지도란 용어를 비록 그 어감상의 제한과 거부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가장 자주 사용되고 있는 까닭에 여기서도 영성지도란 용어를 주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제 워싱턴 소재 영성지도 전문단체인 샬렘 영성연구소의 정의를 살펴보자.
“영성지도는 자신의 영적 삶에 주의를 기울이기 원하는 한 사람 (피지도자)이 특히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보다 세밀한 관심을 집중하여 영적 분별력을 키워감으로 삶의 모든 분야에서 보다 온전히 그 임재에 응답하며 살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다른 사람 (지도자)를 규칙적으로 (대략 일주일 내지 적어도 한 달에 한번 정도) 만나는 지속적인 관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영성지도 과정의 주된 초점은 피지도자가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의 질이 어떠하며 그 관계를 통해 반영되고 도전되는 삶의 모습이 어떠한가에 집중된다.
이 때 피지도자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책임감이 요청된다. 이것은 지도를 받으러 오는 사람이 어떤 형태의 의도적 기도와 그 사람의 일상생활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심각한 인식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전제됨을 의미한다. 한번의 지도과정은 대략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그 기간 동안 지도자와 피지도자는 기도로 충만한 환경 속에 들어가기를 추구해야 한다. 그 때 둘이 함께 사실상 참된 지도자이신 성령님께 관심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지도자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인도 받고 있다고 보일 때는 질문, 도전, 제시,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피지도자 스스로가 드러난 통찰이나 취해야할 행동과정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는 아무리 명백한 진리라 할지라도 지도자가 피지도자에게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피지도자는 영성지도를 받으러 오기 오래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적순례 길을 출발하였음을 전제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의도적 순례는 어느 특정 지도자와 이별한 뒤에도 계속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도자는 단지 그 과정의 촉진자에 불과하다. 그 순례 길에 대한 책임은 바로 피지도자에게 달려있다.
영성지도와 심리치유 또는 상담치유와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상담과 심리치유는 주로 어떤 사람의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 영역을 다루며 그 문제에 대한 건강한 해결책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영성지도는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응답함에 (고통과 문제 가운데서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도) 주된 관심을 둔다. 문제해결은 영성지도의 주된 관심 영역이 아니다.”
물론 영성지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상처와 문제들이 해소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영성지도의 우선적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문제해결 여부를 떠나 본질적으로 영성지도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현재 피지도자에게 역사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함께 분별하는데 그 초점을 맞춘다.
이 점이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당면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하며 그 문제가 해결되면 더 이상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유지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상담이나 심리치유와 명확히 다른 점이다. 영성지도는 상담과는 달리 하나님 안에서 성장이란 목표를 향해 한번 맺은 지도자와 피지도자의 관계가 깨어져야할 특별하고 긴급한 사유가 없는 한 평생 지속되는 특이한 관계이다.
이번에는 막스 투리안 (Max Thurian)의 정의를 살펴보자.
“영성지도 혹은 영혼의 치유는 주어진 심리적, 영적 상황에서 성령의 인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점은 추구이며 그 추구는 상호적이고 영성지도자와 피지도자는 모두 구도자들이다. 즉 추구하고 발견하고 그리스도의 영과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과정이 영성지도의 목적이다. 더 나아가 피지도자의 영의 움직임을 기도 가운데 듣고 그 영을 분별(Spiritual Discernment)함이 지도자의 중심과제이다. 그러므로 영성지도는 일명 영분별의 사역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정의들을 종합해 볼 때 현대적 의미의 영성지도는 주로 일대일의 관계이며, 성령의 역사에 보다 깊이 의존하며, 피지도자가 지도자를 선택하며, 권위적인 복종의 관계가 아닌 친구관계 (Soul Friend)이며, 피지도자의 자발성을 강조하며, 상호적 관계이며, 영분별을 중시하며, 현대 심리학과 상담이론의 적극지원을 받으며, 상호 신뢰 가운데 지속적인 만남이라는 특징 아래 행해지는 영적우정과 동반자의 관계이다.
2) 영성지도의 배경
이미 잃어 버린 보물의 재발견이란 표현으로 언급 바와 같이 영성지도는 기독교의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지속되고 중요시 되어왔던 목회의 중요한 한 도구였다. 그러므로 각 시대마다 영성지도에 관한 강조와 언급이 이어져 왔다. 초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지도자가 없이는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성 바실 (330-379)은 “누군가 자신은 영성지도가 필요 없다고 믿는다면 큰 교만에 빠진 사람이다”고 선언했고 그레고리는 (St. Gregory of Nazianzen; 330-387) “영성지도는 가장 위대한 과학이다”고 말할 정도로 영성지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롬(340-420)은 “지도자가 없이는 혼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로 나서지 말라”고 충고하였다. 더 나아가 16세기의 신비가였던 십자가의 요한은 “지도자 없이 혼자인 영혼은 비록 그가 의롭더라도 마치 외롭게 불타고 있는 한개의 조개탄과도 같다. 금새 식어버리고 말것이다” 고 강조했다.
이처럼 시대마다 강조되어온 영성지도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목회적 차원에서 뿌리를 두고 실천되어 왔다.
첫째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자기계시에 대한 기독교적 신앙의 확인이 영성지도를 요청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우리를 찾고 계시며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영적 성장은 동반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동반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과의 동반관계이다. 이런 차원에서 리보의 아일레드 (Aelred of Revaulx)는 “하나님은 우정이시다 (Deus est amicitia)” 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영적 우정은 지혜를 추구함과 같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함께함의 추구이다. 우정 가운데 머무르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요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
둘째는 영성지도의 목회적 근거는 각 개인에 대한 고유성의 존중에 기초하고 있다. 오늘날 대중화와 그에 따른 대중목회가 일반화되어 있으나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각 개인의 신앙의 성장이란 개별적인 과제이다. 다시말하면 신앙의 성장은 대량 생산된 기성복(ready made)이 아닌 일대일의 맞춤복(taylor made)을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집단적으로 보다는 다양한 개인적인 요구와 관심 즉 개인의 직접적인 체험과 접촉될 때 성장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이다.
세째는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향한 영적 순례로 보는 관점에서 영성지도의 요청이 드러나고 있다. 영적 순례의 길에는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길은 그 누구도 두번가는 길이 아니기에 안심할 수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도 없이 혼자서 가야되는 위험한 길이기도 하다. 또한 각자가 처한 위치도 상황도 다르다. 그러므로 영성지도자의 직무 중 하나는 이러한 순례길에 들어선 인간의 유일 무이함을 인정함으로써 각 사람의 특별한 순례를 존중하고 중시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획일적인 틀에 밀어 넣으려는 노력은 사교가 될 위험한 전조가 된다. 이 모든 일들을 감안할 때 영성지도자가 없이는 은혜와 사랑 안에서 성장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의 순례길에 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적 생활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이해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네째로 영적인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요청에서 영성지도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 정신건강 전문가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으나 이들은 정서적 문제를 주로 대처하도록 훈련받은 전문가들이나 실존적 가치지향적 삶과는 무관하다. 한편 신앙의 전문가는 점점 더 인간발달 이론으로 무장하여 정신건강 전문가와 별 다름 없는 훈련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양쪽의 다리를 놓는 작업이 영성지도라고 볼 수 있다.
3) 영성지도의 가장 시급한 대상인 목회자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독교 영성은 함께 순례의 길을 걸어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는 성령의 동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우리는 누군가 순례길의 동료요 함께 길을 걸어가줄 그 한 사람의 동반자를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동반자를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대상은 목회자 자신이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자신의 영혼의 문제들을 혼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그 결과는 탈진과 동일한 실수나 실패의 반복으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영적인 문제들은 대부분 내면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까닭에 혼자서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데 등잔 밑의 맹점을 보지 못하고 혼자서 해결하려다가 거듭된 실패에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이미 언급했듯이 목회자의 중요한 과제인 존재형성은 먼저 자신을 철저히 이해하고 그 기반 위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세워갈 때 비로서 가능하다. 그렇지 못할 때는 아무리 겉으로 활동적이고 성공적이고 많이 소유하고 이룬 것 같아도 깊은 영성에 이르기 어렵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일은 다른 사람을 아는 일과 전혀 동떨어지게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타인과의 성숙하고 깊은 관계는 우리 자신의 하나님과 바르고 깊은 관계를 가능토록 예비해 준다.
이를 위해 영성과 심리학에 관해 잘 훈련된 영성지도자의 도움이 필요하며 이들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가 자신을 바로 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 나아가 자기 혼자 영적 순례의 길을 걸어가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 그래서 함께 자신의 문제를 터 놓고 솔직하게 나누며, 자신의 확신을 지탱해줄 신뢰를 발견하며, 우리가 그 어떤 인격의 어두운 부분을 드러내더라도 비난하지 않고 들어주는 그런 동반자, 친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목회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고백이 필요한데도 가장 고백이 부족한 존재로 살기가 쉽다.
목회자도 그러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사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자신의 영혼의 문제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없는 사람이야말로 정말 깊은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더 나아가 목회의 본질상, 목회자 자신도 자신의 내면과 영혼의 문제를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먼저 그러한 길에 내려가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영적인 길로 바로 인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러한 영적인도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바르게 인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목회자가 훌륭한 영성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신실하고 책임감 있는 피지도자가 되어야만 한다.
배정웅 목사 (영성지도 전문 사역자) www.agapech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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